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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선생의 수필
19 22 통계카운터 보기   관리자 접속 --+
Name   모시개 (http://lib7269.hihome.comhttp://lib7269.hihome.com)
Subject   섬 길 가기·2 -죽도 그리고 정들포에서 내수전까지
섬 길 가기·2
-죽도 그리고 정들포에서 내수전까지

모처럼의 쾌청한 공휴일이다. '울릉도로 갈까나'란 시집도 낸 바 있는 최 시인과 죽도에 가기로 했다. 저동항에서 손을 뻗치면 잡힐 듯한 채 십여 분도 걸리지 않을 뱃길이건만, 죽도 행 걸음은 쉽지 않았다. 풍랑이 조금만 거칠어도 배가 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동과 섬목을 주로 내왕하는 뱃길에 한두 명 승객으로는 죽도를 들르기에는 채산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청명한 5월의 봄날.  승객이 드물면 섬목으로 갈 작정을 하고 배를 탔다. 타고 보니 객석은 거의 다 찼고, 승선객 중에는 낯익은 사람들도 많았다. 하선객 드물어 죽도에 못 오를까 저어했던 마음은 완전히 기우였다.

바라보기만 하던 죽도는 마냥 신비롭기만 했다. 그 모양이 누에고치 모양 같다기도 하고, 누구는 신데렐라 공주가 잃어버린 한 짝의 구두 같다기도 하고 항구를 떠나가는 커다란 통나무배 같다기도 했다. 죽도와 멀지 않은 곳에 북저바위가 있다. 그 바위도 보는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이는데, 죽도가 임 싣고 떠나는 배로 보일 양이면 북저바위는 아픈 손짓을 하고 있는 애끓는 아낙의 모습이다. 이제 그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죽도로 간다.
깎아낸 듯, 잘라낸 듯 다듬어낸 듯 기묘한 바위 형상들이 시야를 막아서는 본섬(울릉도)의 절경을 즐길 겨를도 없이 죽도 선착장에 배는 멈춘다.
저동항에서 동북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바다에 떠 있는 207,869㎡(62,880평)의 작은 섬 죽도, 일제시대에는 20여 호가 거주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단 한 가구만이 거주할 뿐인 유인도. 배에서 내리면 절벽. 해발 116m의 사방 절벽뿐인 섬을 나선형의 계단을 통해 오른다. 상춘 인파가 참 많다. 오직 한 가구 그 집은 섬 안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영업도 하고 있었다. 섬의 곳곳을 질러 길을 닦아 놓았고, 길마다 오르내릴 수 있는 층계와 휴식 공간을 조성해 놓았다. 섬 둘레로는 목책을 쳐 놓아 바다로의 추락을 방지해 놓았으며, 소나무며, 후박나무, 동백나무가 자연의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온 섬이 임야였으나, 일제 때 남벌을 해 버리고, 나무 베어낸 많은 자리에는 경작지가 조성되었다. 주로 더덕을 재배하고 있었으며, 제법 자란 것도 있는가 하면, 더덕 싹이 올라오는 밭을 아낙네들이 기심을 메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숲에는 여러 가지 잡초들이 무성했지만 본섬(울릉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물 종류는 보이지 않고, 넓은 밭에 활짝 핀 노란 유채꽃과 공들여 가꾼 영산홍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고, 쉼터 옆의 섬벚나무에서는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섬 가운데로는 비교적 넓은 면적에 출입을 통제하는 철책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빗물을 모아 식수를 만드는 집수정이었다. 물이 나지 않는 섬의 삶의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섬을 즐기며 쉼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최 시인과 나는 섬 곳곳에 발자국을 찍기에 바빴다. 한 곳도 놓치지 않고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 싶었다. 서쪽으로는 북저바위와 저동항이 은은하고, 관선굴을 덮고 있는 바위산과 관음도가 일선암을 정겹게 감싸고 있는 북쪽 바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망망대해만이 섬을 외롭게 하고 있었다.
섬은 누에고치도, 신데렐라의 구두짝도, 아낙 두고 떠나는 낭군도 아니었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경작지가 있는 땅이었다. 그 땅을 아름답게 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자그마한 땅덩이 하나가 큰바다 한 켠에서 수많은 생명체들을 간직한 채 홀로 떠서, 향수 같은 가슴 저린 아름다움이 되어 인간의 고독 본성을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었다.

한 서너 시간 동안 거의 모든 곳에 발자국을 찍고 다시 나선형의 가파른 삼백여 계단을 타고 섬을 내려 온 것은 오후 2시. 도동서 죽도를 거쳐 섬목으로 가는 동백호를 탔다. 어디 있다 날아온 걸까.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배를 따른다. 갈매기가 사람을 따라 오는 걸까. 사람이 갈매기를 데리고 가는 걸까. 과자를 허공으로 던지니 잘 받아 채는 갈매기, 승선객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는 갈매기의 모습이 이채로운 바다 풍경을 이루었다.
본섬과 연결된 끝 부분이 사람의 목처럼 잘룩하다 하여 '섬목'이라 부르는 곳, 도동 혹은 저동과의 뱃길을 잇게 하는 조그만 선착장이 있는 곳이다. 천부. 태하 행 작은 버스가 배 닿을 무렵이면 언제나 선착장으로 와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깍새가 많이 날아들어 깍새섬이라고도 불리는 관음도며 바닷가 물 속에 넓죽이 엎드려 먼바다를 바라보며 섬을 지키고 있는 사자 바위,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삼선암을 감상하며 선창까지 걷기로 했다.
옛날 왜인들이 섬의 나무들을 벌목하여 저들 나라로 실어 나르는 선창이라 지명조차 '선창'이 되어 버린 곳, 그 선창까지 관선터널을 지나 걸어서 갔다. 선창부터 포장된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길이야 어느 산엔들 다 있는 것이지만 포장된 길 오르기는 돌길 흙길 오르기보다는 상쾌하지 않다. 그러나 짙어 가는 신록의 숲이 이루어내는 정경들은 포장길의 피로를 덜어내고도 남았다. 사실 이 섬에는 웬만큼 높은 산길, 아주 가파른 경사 길도 아주 많이 포장이 되어 있다. 거칠기만 한 섬 길을 살아야하는 주민을 위한 각별한 배려라 할 수도 있어 운치는 적어도 참고 걸어야 길이었다.

구불구불 구렁이 길을 오르다보니 마당에 잡초 그득한 몇 칸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났다. 지금은 문을 닫은 천부초등학교 석포 분교였다. 운동장에는 체련 기구들이 붉고 노란 페인트칠도 선명한 채로 그대로 서 있었지만 운동장은 아이들이 뛰어 놀던 곳임을 몰라 볼 정도로 잡초가 자욱했다. '미래를 창조하는 슬기로운 한국인'이라는 슬로건이 그대로 걸려 있는 교사 앞의 정원수들은 인적에 아랑곳없이 잘도 자라 있었다. 서너 칸 교실에는 거미줄과 먼지만이 을씨년스러운데, 교무실이었던 곳에는 1일이 토요일인 11월의 월중행사표가 게시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1997년11월에 문을 닫은 것 같다. 아름다운 섬의 산이며 바다야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예와 같을 것이지만, 산중의 교실이며 인가들은 자꾸만 문을 닫아가니, 이 세월 더 흐르면 이 섬 이 풍광을 지킬 이 그 누구일까 생각하니 처연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섬의 인구가 한창 많을 때는 삼만 명에 가까웠다 하는데 지금은 만 명이 겨우 넘을 정도라니 개척 이전의 공도(空島) 상태가 다시 빚어질까 두렵다.

녹슨 자물쇠 걸려 있는 교사 뒤편의 인가 뜰에서는 노부부가 나물을 삶아 말리고 있었는데, 그 외로운 삶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외로움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이곳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곳이 바로 이름도 정다운 '정들포'라는 말을 듣고 몇 걸음 더 올랐을 때, 아하, 그래, '정들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 옛날 개척 당시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개척자들이 떠나지 않으면 안될 사정으로 이곳을 떠날 때는 하도 정이 들어 울지 않고는 못 배겼다는 아름다운 마을 정들포-이를 왜인(倭人)들은 저들 마음대로 돌 많다하여 석포(石圃)라는 정 없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는 깎아지른 벼랑 위에 얹혀서 보기만 해도 정겨운 지형을 이루고 있다. 두 손바닥을 맞붙여 펼친 듯한 모양이나, 바닥은 안으로 오목한 게 아니라 볼록렌즈 모양으로 보기 좋게 살이 져 있었고, 그 살진 부분은 정갈하게 갈아 놓은 산전이다. 주위로는 소나무, 후박나무 섬대나무가 둘러쳐져 자연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고. 울타리 가장자리와 골짜기에 인가 몇 채가 띄엄띄엄 수목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는데 그 나무 사이에 연분홍, 진분홍, 붉은빛, 자줏빛이 어울린 꽃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어서,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 대궐'을 차린 동네였다. 그 대궐 속으로 당장이라도 안겨 들고 싶은 너무나 정다운 모습의 마을이었다. 그 모습을 조망하는 자리에서 뒤로 눈을 돌리니 동그스름하게 펼쳐진 비탈에 파란 초지가 있고 그 초지 밑에는 축사인 듯한 푸른 지붕의 건물이 있고, 초지 건너편에는 섬집답지 않은 현대식 가옥이 있어,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매우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는 순간으로 단박에 정이 들어 두고 떠나기 아쉬운 정들포(정들깨)였지만, 저무는 해를 보고 마냥 있을 수 없어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일이 아쉽기만 했다. 유난히도 많이 우거진 섬대나무며 소나무 숲을 지나 산길을 걷다보니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죽암 쪽이요 바로 가면 내수전 쪽이다. 다시 길을 따라 지난 가을에 땅을 덮었을 낙엽을 밟으며, 평탄한 오솔길을 걷다 보니 왼쪽으로 바다가 환히 보였다가는 우거진 숲 사이사이에서 모자이크 같은 물빛을 반짝이기도 한다. 초록빛 잎새들이 너무 곱다. 최 시인은 몸에도 흠뻑 초록 물이 들어버릴 것 같다고 감탄을 한다. 다시 한참을 걷다보니 와달리(臥達里) 바닷가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그 바닷가 경치가 그리 좋다는데 구름 낀 바다에 수평선은 흐리고 날은 자꾸 저물어 가기로 다음 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왼딴 빈집을 지난다. 함석으로 우데기를 댄 낡은 집 안에는 거주자가 입었을 옷이 벽에 결려 있고, 덮고 잤을 이불이 그대로 늘려 있다. 방문 앞에는 '참소주' 병이 뒹굴고 있는 걸 보니 주인이 떠난 햇수가 그리 오래 흐른 것 같지는 않다.
다시 푸른 숲 원 없이 우거진 비탈의 좁다란 길을 걷는다. 또 나타나는 외딴 집. 섬을 소개한 어느 책에 실린 사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붉은 양철로 거죽을 입힌 집의 모습이며 주위 비탈을 일군 경작지며 물을 뿌리는 노란 고무호스도 그대로다. 그러나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이 집 주인은 도동이나 저동 어디쯤에 살림집을 얻어놓고 농사를 지으러 가끔씩 이 산 속을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섬 집들이 주인을 자꾸 잃어간다는 것이 마치 내 안의 무엇이 나를 자꾸 빠져나가는 것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낙엽 밟히는 소리도 정겨운 오솔길을 지나 석산 마루턱에 이르렀다. 내수전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잠시 접어 두고 왼쪽의 굽이진 비탈길로 들었다. 어디로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으나 길이 나 있으면 이를 수 있는 곳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길을 따라 걸었다. 그 외진 곳에도 인가는 있었고, 비탈이 심해 마당을 마련할 수 없어 집 앞의 비탈에 나무 등걸을 엮어 세우고 그 위에 판자를 덮어 마당처럼 쓰며 나물을 삶아 말리고 있었다. 나물을 뜯고 삶고 말리는 일은 섬 산골 사람들의 절대적인 생업이다.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저마다의 사는 방법을 가질 줄 아는 존재인 것을 실존적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걷다보니 문득 험상궂은 신장상(神將像)이 눈앞을 막아선다. 허연 이빨을 드러낸 사천왕상을 본 뜬 무시무시한 인상이었다. 신장을 곁눈질하며 언덕을 내려서니 나지막한 오두막집 한 채가 나타났다. 집 앞은 마당이자 길이었다. 지나면서 보니 삭발 보살 한 사람이 컴컴한 방안에 앉아 불등(佛燈)을 다듬고 있다. 물 좀 먹고 가겠노라 하고, 지나가서 바위틈을 흐르는 물 한 바가지 먹고, 되돌아 나오면서 그 보살의 인상을 보니 나이는 든 듯한데, 잔주름 하나 없이 맑은 얼굴은 매우 평화스러워 보였다. 이 외진 산중에 홀로 살아도, 무엇에게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들여 기도하는 자세와 마음이 평화스런 얼굴을 가지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석산 마루에 섰다. 내수전으로부터 북면에 이르기까지 길을 내겠다고 산을 다 깨어 놓았다. 엄청난 깊이로 산을 깎아 내었느데, 높다란 절개지에서는 흙과 돌이 곧장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산을 부수어 놓고도 공사는 실패로 끝나고 북면 가는 길 뚫기도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대책 없이 파괴해 버린 자연을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이 공사를 하기 전에 쓴 듯한 울릉도 소개 책자에는 내수전교를 지나면 솔잎 깔린 아름다운 오르막길이 있다고 했는데, 그 아름다운 길이 무지막지한 중장비의 바퀴 아래 무참히 짓이겨지고 만 것이다. 사람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빚어지는 무지막지한 일들에 대하여 참을 수 없도록 치가 떨렸다.
아침마다 늘 다녀가는 내 아침의 목적지 내수전 약수터를 지난다. 오늘 아침에도 들러 한 바가지 알싸한 맛의 그 약수를 마시고 간 곳이기로, 내일 아침이면 또 올 것이기로 지금은 못 본 체 하고 지나갔지만 누가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아 뒤가 자꾸 돌아 보였다.

이제 오늘의 여정을 마감할 시간이다. 오늘 나의 눈과 가슴속에는 정들포며 와달리 산길에서 얻었던, 헤아려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폐교며 빈 집, 자연 파괴의 현장에서 느껴지던 아픔으로 가득 찼다. 그 아름다움이며 아픔은 어쩌면 하나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사랑. 나는 오늘 섬과의 사랑에 흠뻑 빠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무작정 울고만 싶은 그런 사랑의 노예가 된 하루였다. 안겨 울 곳이 있음에야 섬살이가 어찌 외로움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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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03.09 - 10:23
LAST UPDATE: 2001.03.09 -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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